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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쁜 게 아니잖아….

초세계급 모델
​아이스타스 테베
Aestas Tebes

★★★★★ 

나이 : 48

국적 : 그리스

키/몸무게 : 182cm / 62kg

성격 : 

[테세우스의 배―자기인정 역설]

 

여기에 어떤 배가 있다. 이 배의 낡은 판자를 하나씩 교체하여 마침내 모든 판자가
새로운 판자로 교체되었을 때, 이 배는 이전과 같은 배라고 할 수 있는가?
―테세우스의 배 역설

 

예전의 자신과 완전히 달라진 자신은 여전히 ‘나’인가? 아이스타스는 영원히 풀릴 수 없는 이 난제를 가지고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인격이란 것은 결국 살아온 경험과 주변의 영향으로 왜곡되고 변형되어 그 형태를 이루는 것인데, 그 경험과 영향을 통으로 잃어버려 애초부터 새로 쌓아야만 했던 그는 말하자면 완전히 판자가 교체된 배다. 그의 옛날을 기억하는 주변인들은 쉬쉬하곤 하지만, 그도 이미 알고 있다. 자신이 지금의 모습과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을 것 쯤은, 예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가장 큰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나’는 ‘나’인가?

 

오랜 앓이 끝에, 그는 자신이 ‘나’를 ‘나’로 인식하고 있다는 단순한 결론을 내렸다. 자신이 자신을 자신으로 인식하고 있으므로 여전히 사고 이전의 자신과 같다는 것. 허나 이 결론은 그 개인의 것일 뿐, 답이 아니라는 사실 역시 알고 있다. 


 

[나약한 정신과 무용한 방벽]

 

그런 그에게 유일하게 예전부터 이어져 내려온 것이 있다면, 나약한 정신력일 것이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타고난 점이니까. 그는 충격적인 일을 직접 겪거나 목격하면 쉽사리 흔들리는 갈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타고나길 섬세하고 감성적으로 태어난 정신을 다잡고 단단하게 세울 기회가 별로 없기도 했고.

 

그리하여 그는 자신의 정신을 보호할 무용한 방벽으로나마 ‘회피’를 택했다. 무섭고 싫은 일들로부터의 회피, 도망치고 숨고 거리를 두는 것. 파고들고 깨부수고자 하면 쉽사리 깨지는 나약한 설탕 벽. 그래도, 그나마 그가 빠르게 회복하고 다시 낙관을 바라볼 수 있는 인간인 데는 이 얇은 보호막이나마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기타사항 : 

 

★ 과거사

*자살기도(투신), 그로 인한 후유증에 대해 언급되어 있습니다. 가능한 한 간결하고 깊지 않은 서술을 지향합니다.


 

그에게는 20세 이전의 기억이 없다.

 

―온통 하얀 천장, 소란스러운 소리, 머리에 감긴 붕대와 부자유스러운 몸, 눈물을 흘리는 부모님….

그의 첫 기억은 이런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통째로 잘려나간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궁금하지도 않고, 알고 싶지도 않고, 애초에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다만 주변인들의 말을 대충 조합해보면 알 수 있는 것은 단 하나였다. 투신을 했다. 어떤 사고나 사건에 휘말린 것이 아니라 스스로, 드높은 건물 꼭대기에서 뛰어내렸다고 했다. 그럼에도 살아남은 건 기적이라고. 하긴, 그는 항상 결정적일 때 운이 좋았다. 

 

20세부터 22세까지, 온전한 회복에는 2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손상된 뇌를 몇 번인가 수술하고, 그 탓에 머리 옆쪽으로 긴 흉이 남고, 부러진 뼈가 완전히 붙고 재활을 끝내고 자신이 잊어버린 지식들을 다시 뇌에 쑤셔넣기까지. 그 후 부모님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 아이스타스는 완전히 집 안에 틀어박혔다. 투신의 영향이라고는 후유증으로 남은 주의집중력 결핍과 기억력 감퇴, 편두통, 그리고 마지막 순간이 기억 없는 뇌리에 투명하게 박힌 탓인지 남아버린 생존 욕구―살아있는 것에 대한 갈망 뿐. 자연스럽게 그는 위험한 것이 없는 집 안에서, 과거의 자신이 무엇을 바라고 무엇을 꿈꾸다 결국 이루지 못했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지내게 된다.

 

그런 그의 삶을 바꾼 것은 그렇게 폐인이 된 지 1년정도가 지난 뒤에 보게 된 단 한 편의 방송. 여느 때처럼 무료하게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발 닿은 곳에서 어느 프로그램의 특별편으로 런웨이 모델들을 다루고 있었다. 그는 이상할 정도로 순식간에 그 방송에 빠져들었고, 어느 순간부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심금을 울릴 만 한 요소는 아무것도 없었는데도 이상하리만치 눈물을 흘리며 그는 깨달았다. 아마도, 이것은 옛날의 내가 꿈꿨던 것이리라고.

 

그 다음으로 한 일은 집안에만 처박혀 있어 엉망이 된 몰골을 손질하는 일이었다. 머리를 다듬고, 깨끗하고 단정해진 채로 부모님에게 자신의 의사를 밝혔다. 부모님은 반대하지 않았다. 사고 이후 폐인이 되어 있던 하나 뿐인 자식이 제 길을 찾겠다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부모님을 설득한 그는 경험도 경력도 없는 자신을 받아들여줄 소속사를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유일하게 한 곳, 소속 모델이 계속 빠져나가 망하기 직전의 소속사만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로부터 1년 뒤, 24세. 기초적인 교육을 받고 모델로서 그는 첫 런웨이에 발을 딛게 된다.


 

★ 그 외

 

: 이전의 기억이나 삶에 대해서는 자세히 들은 바가 없다. 다만 그는(성질이나 성격이) 좀 특출났고, 아마 부모님의 학구열을 그래서 따르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우울증과 같은 문제를 겪었을 거라는 추측 정도만 난무할 뿐.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을 외부로부터 들어봐야 의미 없는 일이니 그는 이전의 삶을 없던 것처럼 깔끔히 버렸다. 어쩌면, 낙관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은 이전의 괴로움을 버려서일 수도 있겠고. 나약한 정신까지 바꿀 수야 없겠으나 그래도 나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 후유증으로 주의집중력 부족과 기억력 감퇴,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으나,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완치될수도 알 수 없는 치료를 받느니 지금에 만족하기로 한 듯. 

 

: 가장 첫 기억이 강렬했기 때문인지, 삶에 대한 집착이 존재한다. 그것도 꽤 심하게…. 삶을 버리려 시도한 사람이 삶에 대한 집착을 갖다니 아이러니하지만, 아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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